매년 겨울철 굴로 인한 노로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달 24일 A씨는 직전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굴보쌈을 먹은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약 30시간의 잠복기 후 복부 통증과 설사 등 여러 증상을 느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못한 그는 설 연휴가 끝난 뒤에도 복통에 시달리느라 업무에 지장을 겪었다.
B씨 역시 같은 날 초밥집에서 사온 생굴을 먹고 노로바이러스의 고통을 느꼈다. 생굴을 먹은지 이틀 뒤부터 구토와 설사가 이어졌고, 결국 다음날 응급실로 직행했다. 그는 "병원에서 '굴 먹고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올해 겨울철에는 굴 등 해산물을 먹지 말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겨울철에 병원을 찾는 노로바이러스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전국 102개 표본감시기관의 환자 감시 현황에 따르면 2016년 12월 4일부터 10일까지 50주에는 총 222명의 노로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지만, 신고하지 않아 통계에서 누락된 사람들이 잠재해 있어 피해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 급증한 노로바이러스 환자들에 대해 구강모 중앙대학교병원 내과 의사는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분들이 대부분 해산물 중에서도, 특히 '굴을 섭취했다'고 얘기한다"면서 "항상 이맘때쯤 노로바이러스 환자들이 급격히 증가해 이를 염두에 두고 진료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로바이러스 확산이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의 상황 인식과 대처는 미미한 수준에 그쳐 소비자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앞서 지난 달 25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롯데의 회원제 창고형 마트인 빅마켓에서 판매한 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돼 판매가 중단된 바 있다. 이 굴은 경남의 한 굴 생산업체가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양수산부는 문제가 발생한지 9일이 지나고 나서야 "경남 통영·거제·고성 등의 일부 해역에서 생산된 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해당 지역의 생식용 굴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고 3일 밝혔다. 특히 해수부의 조치는 통영·거제·고성 중에서도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된 일부 해역에만 국한돼 있어 해당 지역의 굴을 접하는 소비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해수부는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된 해역에서 생산되는 굴을 생식용으로 유통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 해당 지역의 생굴이 생식용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등의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강한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해수부 관계자는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하더라도 식품위생법상 식중독과 관련이 있는지 근거 규정이 없어 강제적 제재가 불가능하다"면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역의 굴은 꼭 익혀서 섭취하라는 내용을 생산자와 가공자, 지자체가 표기하도록 홍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측은 역학조사를 통해 굴과 노로바이러스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지에 대해 "결과를 최종 확인하기까지는 한 달에서 두 달 가량 걸린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가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는 3~4월에 추가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해수부는 지난 2일 경남 통영의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굴수협)이 생식용 굴 판매를 중단한 후에야 조치에 나서면서 '늑장대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굴수협 유통판매과 관계자는 "해수부의 발표 전날부터 노로바이러스 검출 여부에 따라 이미 생식용, 가열·조리용으로 유형을 나눠 유통했다"고 밝혔다.
굴은 매년 패류 판매량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겨울철에는 특히 제철을 맞아 그 수요가 급증한다. 이에 따라 굴 소비자들의 피해가 매년 겨울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불안은 지속될 전망이다.
주변국인 일본의 경우 지난해 12월 전국적으로 노로바이러스가 '대유행'하자 재빠르게 대응한 바 있다. 일본 미야기현의 11개 해역 가운데 10곳에서 채취한 생식용 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되자, 정부는 곧바로 6일동안 현내 모든 해역에서 생식용 굴의 출하를 보류하는 등 발빠른 초동 대처에 성공했다.
일본 정부는 또한 도쿄와 사이타마 등 의료기관 한 곳당 환자 수가 20명을 넘어선 13개 지자체에 경계령을 발령하는 등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이는 겨울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노로바이러스 유행'을 안이하게 보고 있는 우리 정부와는 대조적이어서 관련 부처가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