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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이해하기.

히말라야돌소금 최가소금 2021. 4. 2. 06:19

이글은 제가 10년 전에 다음카페 -히말라야돌소금-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현대에 와서 성리학은 실생활에 이념으로 필요성이 증대 하고 있는데 반하여 성리학의 명칭만 알고 있지 성리학의 이론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전문학자들이 아니면 연구를 할려 하지도 않아 사장된 이론이 되었습니다. 성리학을 좀더 쉽게 풀어 씀으로서 성리학을 이해하고 윤리와 도덕의 지표가 되어 우리의 삶이 좀더 정신적으로 풍요로와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쓴글이 사장되고 있어 이렇게 블로그에 다시 올려 봅니다. 즐독 하세요.

 

 

공명조 (몸은 하나, 머리는 둘. 둘의 생각이 같을때도 있고 다를때도 많다.)

요즘 사업도 비수기를 맞아 심심하던 차에 우리조상들은 어떤 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사셨을까? 하는

궁굼증을 가지고 있던중,

조선시대 대표적 사상가이신 이황선생의 주리론에 관해 알아보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회원님들은 사전만 읽어 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줄 믿습니다만, 제가 해석하는 방향은 이렇다는 것을

제시 하고 싶기도 하고, 제가 잘못해석하고 있으면, 첨삭을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한번 써봅니다.

 

우선 사전에 나온 이기이원론에 대하여 알아보면,... 

아래 사전에서 퍼온글입니다.

  

이기이원론 (성리학)  [理氣二元論] 

성리학의 이기론 중에 특히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기일원론(氣一元論)과 구별되는 견해이다. 이기론적 세계관을 완성한 주희(朱熹)는 "이와 기는 서로 떠날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고 했다. 즉 이는 기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며 또 기는 이에 근거해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한편, 이와 기가 각각 독립적인 실재(實在)로서 서로 구별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구별되는 측면을 설명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했는데, 이러한 견해를 가리켜 이기이원론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특히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거나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실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기일원론에서는 이가 기와는 별개의 실재이면서 기에 내재하여 그 원리나 법칙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기 스스로의 법칙성이나 기 스스로가 바르게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를 가리켜 이라고 했다.

 

주희의 이기이원론을 더욱 명확한 이론체계로 재정립한 것이 이황(李滉)의 이기론인데, 그의 이론을 가리켜 주리론(主理論)이라고도 한다. 주리론의 특징적 학설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서, 이는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이 자체의 운동으로 음양(陰陽)을 낳는다고 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며 또 기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라는 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 이러한 주리론은 이와 기의 근본적 차별성과 기에 대한 이의 선차성(先次性)·우위성(優位性)·능동성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그 극단적인 견해가 이진상(李震相)의 이일원론(理一元論)이었다. 이일원론에서는 세계의 근원적 존재나 근본적 원리로서의 지위가 이에만 인정되고, 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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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전을 쉽게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기이원론(주리론)을 만든 이황과 이기일원론을 주장한 이이의 공통점은

생물에는 이와 기가 합쳐져 있어야만 실체를 드러 낸다는 것입니다.

이,기 모두 정신적(형이상학적)인 것입니다.

 

먼저 이글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理와 기氣가 무엇인가 부터 알아야 겠네요.

(퍼옴)//기(氣)는 우주 구성의 소재(素材)로서 음양(陰陽)의 기운, 즉 힘으로서 자연과학상의 에너지이며,

이(理)는 기(氣)의 운동이나 작용의 조리(條理)로서 철학적으로는 원리(Principle)·형식(Form)·로고스(Logos)·이데아(Idea)·규범(Norm)·당위(Sollen)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학적으로는 법칙(Law)의 뜻이다.//(퍼옴끝)

 

 

 

이황의 사상은 이런것입니다. 이황이 말하는 이(理)란것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소뇌에서

명령하는 인간의 생명유지, 또는 사물의 과학적판단, 객관적판단 들을 말하는 것이고,

기(氣)란것은 대뇌에서 명령하는 한차원 높은 대승적, 이상적 차원의 명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황은 이가 먼저 만들어져서 기가 생긴다는 이론을 주장한것이 주리론입니다.

 

예를 들어 소방관이 화재현장속을 뛰어 들어갑니다.

그소방관의 이理는 '들어가면 죽는다 들어가지마라' 하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소방관의 기氣는 '너의 직업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들어가라.' 하고 명령합니다.

또는 들어가도 아무위험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나올수 있다. 하고 명령합니다.

아니면, '위험하니 들어가지마라.'하고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즉, 이와 기가 항상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융화 할수도 있고, 분리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고 기는 상대적인것이라고 합니다.

이황은 여기서 물리적, 과학적 판단의 소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理)라 하였고, 이가 먼저 존재해야지만

기가 나올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기가 융합되어야지만 사물의 행태가 나온다는 입장은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하고 동일합니다.

즉, 어떤방식으로든 모든 사물의 행태에는 이와 기가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소방관이 상황판단을 먼저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듯이. 상황판단을 이理라 보고 행동명령을 氣라 보시면 

될것입니다.

 

이야기가 좀 딱딱한가요?

 

방향을 조금 전환해서 우리 조상들은 사물에 기가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우리는 산에 기받으러 간다는 소리를 자주 합니다.

우리조상들을 산에 좋은 기가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이황도 "산을 오르는 것은, 책을 한권읽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이 쓴 책에도 글쓴이의 기가 살아 있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산에도 기가 있어 산에오르면 사람에게 좋은 기를 받을수 있다는 이야기 일겁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식물에도, 동물에게도 기가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속리산에 지나가는 임금에게 인사를 했다는 정일품 소나무가 있지요.

나무가 설마 인사를 했겠습니까마는 바람이 불어 절하는 모습이 보였거나,

모습이 그러했겠지만, 나무에게 관직을 하사한 전례는 어느나라에서도 찾아 볼수 없습니다.

아마 임금이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을 것이라는 본인의 생각입니다.

그만큼 조상들이 이理와 기氣를 중시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조상들은 식물까지는 기의 존재를 인정했는데, 이理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동물서 부터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뱀이 새둥지 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어미새는 어린새끼들을 위해 뱀을 쫒아내려 온몸을 던져 싸움니다.

어미새의 이러한 행동은 理와 氣가 동시에 존재하여야지만 나올수 있는 행동이란 것이지요.

 

이런연유로 성리학도 동물의 취식을 금하는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않나 하는게 본인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동물의 이理는 아주 미약한 수준의 것으로 치부해 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담 입니다만,

저는 가끔 동물의 기가 인간보다 세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흔하디 흔한 목숨받쳐 주인을 구한 개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나,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는 소와 말들을 볼때나 동물의 기가 인간의 기보다 세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합니다.

 

다시돌아가서 성리학을 이야기 하자면 사단 칠정론을 알아야 겠습니다.

  (퍼옴)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이황 기대승 성리학 논쟁을 말한다. 사단(四端)은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仁之端),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義之端),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禮之端),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智之端)이라고 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단(端)을 모아서 사단이라고 하며, 칠정이란 예기에 나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즉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을 말한다. 이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주장을 사칠론이라고 하며, 또한 이것은 사람의 견해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며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있어서 오랫동안 논쟁 대상이 되었다.

 

 

사칠이기논쟁

사칠이기논쟁(四七理氣論爭)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그의 문인(門人) 고봉 기대승과의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및 이기(理氣)에 관한 논쟁으로서 조선의 유교계에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논쟁이다.

이황

고 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취하고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기대승

라고 하여 사단과 칠정의 이기분속(理氣分屬)을 반대하고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을 취하여 주기적(主氣的) 경향을 띠게 되었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몇 해 뒤에 다시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기대승의 전설(前說)을 가지고 이황의 설을 반박하여 우계(牛溪) 성혼(成渾)과의 사이에 논쟁이 거듭되었다.

성혼

라고 하여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이에게 질문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이이

라고 하였다.

이이는 이기일도설(理氣一途說)로써 이발(理發)을 부정하고 기발이승(氣發理乘)만을 관철하였으며, 사단과 칠정의 근원으로서 이황의 이른바 이발·기발이란 두 묘맥(苗脈)을 부정하고 기발(氣發)의 한 묘맥만을 인정하였다.

이황의 이발, 이이의 기발이란 상반되는 견해는 다음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의 양대 진영으로 갈리어, 유교계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계속하였다. 이황을 지지하는 주리파는 영남지방에서, 이이를 지지하는 주기파는 경기·호남 등지에서 성행하였으므로 각기 영남학파·기호학파라고도 일컬어졌다. 양파는 모두 자파(自派)의 학문적 근거를 성리학의 대성자 주희에게 구하려 한 나머지, 주기파의 송시열 한원진의 공저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考)>는 주희의 어록을 세밀히 조사함으로써 주기론의 근거를 고증한 것이며 이에 대하여 주리파의 이진상(李震相) 저(著)인 <이학종요(理學宗要)>에서는 주희의 어록이 이발을 주장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변증하였던 것이다.

(퍼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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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은 퍼옴글에 잘나타나 있고, 성혼과 이이의 문답에서 주리론과 주기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성혼의 질의문을 해석해보면-

 

인간의 마음은 보이지않기에 하나인데, 각자, 개인적인 기에서 나온것이 인심이고,

이에서 나온 인간의 바른진심으로 추구하는것이 도심이다.

인심은 기를 위주로 발생하고, 도심은 이를 위주로 발생하는데 이황이 사단은 이에서 발생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생한다는

것과 무슨차이 입니까? 이기동시발생론이 맞는지 이황의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연구하여 알려주게...

 

여기에 이이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형(성흔)의 말대로 이기동시발생론이 맞다면, 이와 기가 마음속에 따로 각각 자리잡고 있어, 성질이 나타나기 전에, 인심,도심이

서로 통하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이에서 나온것은 도심이되고, 기에서 나온것은 인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두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된다.  그러면 처음에 나오는것은 기이고, 기가 나온 까닭은 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가 아니면 마음이 나올수 없고, 이가 아니면 나올까닭이 없는 것이니, 어느것이 먼저이고, 합쳐있거나 나뉘어 있거나 한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리론의 이기동시발생론은 틀리다.

 

 

ㅎㅎㅎ 해석도 어렵네요.

 

이 대화를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쉽게 풀자면 예를 들어야 겠지요.

우리가 길을 걷다가 구걸하고 있는 거지를 만납니다.

거지를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요. 불쌍하다는 생각이 사단의 측은지심(惻隱之心) 입니다.

이황은 사단의 이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이理 또는 도심이라는 것이지요.

즉, 도심이 거지를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겁니다.

 

그후 거지에게 천원짜리를 한장 꺼내 줄까, 말까 고민합니다.

나보다 불쌍한데 줄까? 나 아니더라도 동냥줄사람 많아... 나도 돈없어.... 등등 고민을 하지요. 

이고민을 이황은 기.인심 또는 칠정 이라고 봅니다.

 

그후 거지에게 천원짜리 한장을 건네거나, 그냥 지나치거나 합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에게는 이와 기라는 거지를 보고 불쌍하다, 줄까,말까하는 두가지 마음의 각각의 근원이 있다는 것과

두가지마음이 합쳐져서 행동 또는 마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율곡이이의 주장은

거지에게 도와주거나, 그냥 지나치거나 하는것은 줄까,말까 고민을 했으니까 나온 행동(표출된 마음)이요.

거지를 보고 불쌍하다 생각했으니, 줄까,말까 고민을 했으므로 도심,이와 인심,기와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즉, 이와 기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의미 합니다. 반면 이황은 이와 기가 분리되어 있고, 물리적 결합에

의해 결과(행동또는 표출된마음)가 나온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까지만 공부해야 겠습니다.

더 깊이 들어 갔다간 약200년간 지속된 사칠이기 논쟁에 저도 빠져 들겠습니다. ㅎㅎㅎ

 

유교의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에 의해, 이황이 창시한 주리론은 영남지방에서 영남학파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이이가 창시한 주기론은 경기와 호남지방에서 기호학파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학문이론을 가지고 지역별로 나뉘어 대립하고 싸운사실은 서양에서도 종교개혁때 나타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이라기 보단 감정우위의 동물인가 봅니다.

 

이정도 배우니 우리조상들의 인문학이 서양의 것보다 훨신 앞서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서양의 철학은 20세기에 와서야, 순수이성론을 주장한 임마뉴엘 칸트에 의해 이理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아직도 서양철학은 기氣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기의 존재를 인식하는가, 못하는가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철학이란 인간사의 가장근원 적인것이며

철학에 의해 하부구조 즉, 정치와 경제,과학등이 각각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나지 않는, 더이상 진전이 없는 주리론과 주기론의 대립이 약 200년간 지속되었다는 것은 실용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과소비였고, 소모적이였다고 생각됨으로 우리 조상들이

반성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17세기 중반에 들어와 이러한 더이상의 진전이 없는 소모적 논쟁에 염증을 느낀 학자들 사이에서 실학사상이 싹트게 됩니다.

인간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진짜 학문이라는 것이지요.

 

요즘에 와서 다시 이 성리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가 인간의

고뇌를 모두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철학이야 말로 변증법적으로 발전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숙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